칭기즈칸과 유비, 두 영웅의 공통점(리더십, 승리자,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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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과 유비, 두 영웅의 공통점(리더십, 승리자, 성공 비결)

by 마이티 개미 2024.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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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은 12세기에 몽골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딛고 장성하여 몽골대륙을 통일하였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 아랍에까지 이르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인물입니다.
 

터치 시, 나무위키 칭기즈칸으로 갑니다.

 
유비는 후한말인 2세기에 중국에서 태어나 3세기에 촉한의 황제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터치 시, 나무위키 유비로 갑니다.

둘 다 너무 유명해서 긴 설명은 필요 없이,
아주 훌륭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들임에 분명합니다.
 

헌데 이 두 명, 칭기즈칸과 유비에겐 아주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종으로 남긴 자리 (칸, 황제)에 올라가기 전에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이때에 부하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하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절대복종으로 자신의 주군을 지켰습니다.
 

A. 칭기즈칸(테무진)의 해산 명령과 부하들의 절대복종

 

1. 배경

1206년 테무진은 몽골 제국의 통일을 거의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당한 후, 테무진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여러 부족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심지어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2. 해산 명령

1206년 테무진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해산 명령을 내렸습니다.
   - 각자의 땅으로 돌아가기
   - 테무진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
 

3. 부하들의 반응

하지만 테무진의 부하들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제베: 제베는 테무진을 설득하여 군대를 재집결하고 몽골 제국의 통일을 완성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  목화리: 목화리는 테무진의 명령을 거부하고 테무진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  보오르추: 보오르추는 테무진의 명령을 거부하고 테무진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4. 절대복종의 이유

테무진의 부하들이 테무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테무진에 대한 절대복종을 보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테무진에 대한 충성심: 테무진의 부하들은 테무진에게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테무진은 뛰어난 리더십과 인격을 갖춘 지도자였고, 그의 부하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몽골 제국의 미래를 위한 책임감: 테무진의 부하들은 몽골 제국의 미래를 위해 테무진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무진이 죽거나 ốm에 걸리면 몽골 제국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테무진의 명령에 대한 의문: 테무진의 부하들은 테무진의 해산 명령이 몽골 제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5. 결과

결국 테무진은 부하들의 설득에 응하여 해산 명령을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1206년 칭기즈칸으로 즉위하여 몽골 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6. 역사적 영향

테무진의 해산 명령과 부하들의 절대복종은 몽골 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테무진의 부하들이 테무진에게 가지고 있었던 깊은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몽골 제국의 미래를 위한 부하들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참고자료
칭기즈칸: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A%B0%88%EB%9F%89
몽골 제국: https://ko.wikipedia.org/wiki/%EB%AA%BD%EA%B3%A8_%EC%A0%9C%EA%B5%AD
제베: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B%B2%95
목화리: 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C%9B%90%EB%9F%89 

 

리원량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리원량(중국어: 李文亮, 병음: Lǐ Wénliàng, 1986년 10월 12일~2020년 2월 7일)은 중국의 안과 의사이다. 2019년 12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외부 공개를

ko.wikipedia.org

 
 
 
 

B. 유비의 해산 명령과 부하들의 절대 복종

 

1. 배경

유비는 184년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습니다.
연패: 유비는 여러 전투에서 패배하고, 휘하의 많은 병력을 잃었습니다.
주변의 배신: 유비는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불안정한 생활: 유비는 일정한 거처 없이 전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2. 해산 명령

201년 유비는 조조에게 패배하여 하북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비는 적들에게 쫓기고, 극심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국 유비는 더 이상 부하들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해산 명령을 내렸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따르지 말고 흩어져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자신은 혼자 도망쳐 살겠다
 

3. 부하들의 반응

하지만 유비의 부하들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관우: 관우는 유비를 설득하여 함께 도망칠 것을 주장했습니다.
  -  장비: 장비는 유비를 보호하기 위해 적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  조운: 조운은 유비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4. 절대복종의 이유

유비의 부하들이 유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유비에 대한 절대복종을 보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비에 대한 충성심: 유비의 부하들은 유비에게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비는 뛰어난 리더십과 인격을 갖춘 지도자였고, 그의 부하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유비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 유비의 부하들은 유비가 언젠가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비는 비록 여러 번 패배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덕적 의무감: 유비의 부하들은 유비에게 도덕적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유비는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그들에게 먹여 살려주었습니다.
 

5. 결과

결국 유비는 부하들의 설득에 응하여 해산 명령을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208년 적벽대전에서 승리하여 오나라를 막아냅니다.
 

6. 역사적 영향

유비의 해산 명령과 부하들의 절대복종은 삼국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유비의 부하들이 유비에게 가지고 있었던 깊은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유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테무진의 라이벌이었던 자무카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을 받아서 결국엔 친구였던 테무진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국지의 원소도 곽도, 봉선 등 핵심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해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패해 죽게 되었습니다.
 
능력, 지략도 중요하지만 덕이 근본 바탕이 되어야 함을 칭기즈칸과 유비의 예에서 우리는 배워야겠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칭기즈칸은 허영만 화백님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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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고 고우영 화백님의 삼국지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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